나의 이야기

예전 이발관

lkjfdc 2022. 9. 17. 10:24

지금은 많은 성인남자들도 이발관 보다는 미용실 또는 미장원에 가서 머리를 한다. 결혼하기 전 까지는 안양의 이발관에 가서 머리를 했었고 한번 알게 된 곳에 계속 드나들었었다. 미장원엔 없는 비누거품 솔과 면도기가 인상적이었고 머리를 감을 때는 물통의 물을 조루에 담아 뿌리고 두번 정도 감겨줬었다. 면도를 할 때는 긴장을 했지만 오히려 편안해서 잠이 들기도 했었다. 이발을 한 후 건네받던 야쿠르트가 인상적인 곳도 있었고 70년대엔 대형 미용실 처럼 여러명의 이발사가 머리를 깍아 주는 곳도 있었는데 수원에 가면 역앞에 '우주이발관'이라는 큰 업소가 있었다. 경기도 광주에 이사를 한 후 자주 간 곳은 초등학교 후문의 구내이발관(사실 구내에 있지 않았음 지금도 주인이 바뀌었지만 영업을 하는 것으로 안다.)과 세들어 살던 옆집의 용마이발관을 자주 갔었고 5학년 때 쯤엔 4학년의 병호라는 아이와 잘 놀았고 집의 아버님이 이발소를 하셨는데 이름이 '안성이발관'이 었다. 충북의 시골에선 '장미이발관'이라는 이발관을 단골로 삼았었다. 그집을 알게 된 건 당시 누군가 급한일로 시골의 이발소에 전화를 하여 우리집에 연락좀 해달라고 했고 이분이 직접 우리집을 들려서 알게 되었다. 좁은 면소재지에서 누구집에 세들어 사는 '군인가족'을 찾아 연락을 해달라고 하니 급히 뛰어 오셨던 것 같다. 이발소안에는 수배자 명단이 있고 아무래도 눈썰미가 있어 이발사들의 눈에 들어왔던 것 같다. 가끔 바둑이나 장기를 두기도 하고 쌓아논 신문이나 주간지를 읽을 수 있고 권투경기나 축구경기를 할 때의 분위기는 전파사나 만화가게 못지 않았다. 지금은 많이 보기 어려운 이발관... 대도시엔 다른 형식으로 하는 곳이 있다고 하지만 내가 기억하는 곳과는 많이 다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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