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라는 나라는 전세계를 전쟁터로 상정하고 훈련하며 준비한다.
다양한 피복과 먹거리가 있고 이 중 레이션은 미군들이 야전에서 별다른 도구없이 까먹을 수 있다.
해방후 6.25동란시 그리고 미군이 주둔하는 지역에서는 이 레이션이 흘러 다녔고 선물로 주기도 하고 암흑가에서 이것을 차지하기 위해 싸움도 있었다.
미제물건이 나올때 같이 흘러나오는 것이다 보니 지역에 뿌려져 돈의 흐름에도 영향을 주었다.
베트남전이 터지고 우리군은 미국의 요청으로 의료지원단 부터 공병부대가 파병을 했는데 비둘기 부대가 바로 그것이었다.
듣기론 내가 살던 한강유역에서 훈련도 하고 준비했다고 했다.
전투부대의 파병을 놓고 말들이 많고 반대가 있었지만 당시 우리군이 베트남엘 가지 않으면 주한미군을 뺀다고 했고 육본에서 작전을 책임진 채명신소장은 참전을 처음에 반대 했으나 당시 우리군의 전력으로 북한을 막을 수 없고 미군을 잡아둔 대신에 우리군이 대신가서 미군이 사용하던 기본화기부터 중화기를 받아 군을 현대화하며 정규전으로 대응하기 보다는 6.25때 태백산 공비토벌이나 지리산토벌의 경험을 삼아 주민들을 움직여 군인들과의 관계를 개선시켜 전면전을 피하고 우리의 실리를 챙기고자 했다.
그리고 비용은 미국이 부담하며 각종 피복부터 전쟁에 소요되는 것을 일본이나 다른나라에서 만드는 걸 쓰게 하는 것 보다 우리기업의 것을 공급받게 하고 이로 인해 낙후된 대한민국 경제를 성장 발전시키고자 하는 목적이 있었다.
당시 파병을 가기전 부터 베트남의 상황을 주시했고 직접 현지에 다녀오고 연구하여 시도했던 것들이 맞아 떨어짐으로서 우리군은 베트남 전쟁이후 수도권을 담당하는 3군사령부를 만들었고 무기의 현대화가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미군의 것을 먹고 쓰기 보다는 우리 나름의 것들이 만들어지는데 바로 K레이션이라는 전투식량이었다.
미군의 것이 아무리 다양하고 편하다고 했지만 오래 먹을 수 없었고 우리군의 욕구를 채울 수 없었으며 그래서 미군들에게 김치와 생선통조림을 부탁했으나 일본계 미국인이 만든 시제품을 갖고와 보급하려고 했고 채명신 장군은 이것을 틀어 국산김치통조림과 고추장, 멸치볶음 같은 걸 개발하게 하여 국산화 한다.
처음엔 기술이 부족하여 녹물이 생기고 운반중 상하고 했지만 결국 성공하여 장병들 뿐 아니라 국내기업도 혜택을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미군의 것을 좋아하고 인정하던 습관이 변화하여 우리군의 마음가짐도 변했고 많이 개선되었다고 한다
애초에 명분없는 전쟁에 투입되면서 많은 반발이 있었고 이기기 힘들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 속에서 우리군의 실리를 챙기고 약했던 우리 경제를 성장시키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피를 흘렸던 분들의 노력을 인정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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