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충주 탑평리 중앙탑

lkjfdc 2021. 2. 28. 09:58





국토의 중앙을 이야기할 때 자신들이 중심이 되길 원하는 경우가 있다.

수학적으로 따져 보기도 하고 문화적으로 판단하기도 하며 당시 상황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충주에 가면 탑평리 7층 석탑이 있으며 이 탑을 중앙탑이라고 하는데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었다고 한다.

당시 신라의 크기는 통일 후 넓어지긴 했으나 고구려 땅은 대부분 차지 하지 못하며 북쪽엔 발해가 세워지는데 발해는 나라 이름을 '진'이라고 하여 한글자로 하는데 이 나라이름이 한 글자 라는 건 당시 '당'나라와 대등한 관계를 나타내며 초기 당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신라나 발해나 당과는 원수지간이었으나 차차 완화되고 친선관계를 맺는데 당시 당은 우리국토를 통째로 먹으려 했다.

발해는 스스로 ' 고구려' 라고 했고 나라 이름이라는게 쉽게 바뀌지 않는 것도 있겠지만 스스로 그 뿌리를 고구려라 했으니 그 정체성은 지금 우리나라 이름에도 있다.

아무튼 통일신라의 중심이라고 생각한 중원경에 소경을 만들어 경주에 치우친 세력들을 이주 시키고 견제한다.

충주부근은 5세기에 장수왕이 내려와 고구려 땅으로 삼고 백제는 400년 넘게 수도로 삼았던 서울을 빼앗기고 공주로 도읍을 이동하고 또 한번 부여로 천도를 하고 나라 이름을 ' 남부여'로 바꾼다.

그 후 신라는 한강을 백제와 함께 차지 하지만 이 땅을 놓고 싸우다 백제의 '성왕'은 전사를 한다.

조선시대에도 충주는 임진왜란을 겪으며 격전지가 되고 6.25때도 전란을 피하지 못하는데 현재도 전략상 중요하다.

중앙탑이 있는 충주 중앙탑면 탑평리는 지명(원래는 충주 가금면)이 나타내듯 탑의 의미가 어느 정도 인지 알 수 있고 이곳에서 조금더 오르면 중원고구려비도 있도 바로 아래엔 우륵이 가야금을 타며 망국의 한을 달랬던 ' 탄금대'가 있고 이 탄금대는 앞서 말한 신립의 군사가 일본군과 싸우다 패하고 몸을 던진 곳이며 그 아래로 더 이동하면 ' 임경업장군'의 고향이 있다.


어머니가 초등학교 시절 20여리를 걸어 소풍을 자주 가셨던 곳이 중앙탑이었고 더 위로 가면 시인 '신경림'선생의 시에 나오는 '목계장터'의 무대 '목계나루' 가 있다.

그리고 각종 광산이 있어 전기가 일찍 들어왔다고 한다.

명성황후가 장호원을 거쳐 도망했던 곳도 충주 노은면이며 이곳에서 황후의 친정 여주가 멀지 않다.

과거엔 야생조수가 많았다고 하며 지금도 흔한 것 같다.



어머니는 충주에서 나서 충주의 병원에서 돌아가셨다.

외가가 이곳에 있었으나 현재는 대부분 돌아가시고 이모님댁이 있으나 가본지 오래다.


충청도 땅이지만 한강수계다 보니 흔히 생각하는 금강수계나 삽교천 부근 내포와는 다른 언어를 쓰고 바로 위 원주나 이천, 여주와 언어와 문화가 비슷한 교통의 요지이며 다양한 문화재가 있다.

중앙탑 주변은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에서 북한군인들이 서울시내에서 도망을 가다 갑자기 배경이 바뀔 때 등장하는 곳이기도 하다.


코로나 때문에 모이기가 힘들지만 답답함이 느껴질 때 가보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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