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이야기

한화 이글스 18연패가 끝나길...

lkjfdc 2020. 6. 13. 10:24



한화이글스가 18연패를 했다.

18연패는 우리나라 프로야구 초기 삼미슈퍼스타가 만들었던 기록이며 이 선수단은 당시 다른 야구단 보다 선수층이나 재정지원 등이 열악했고 삼미라는 그룹도 야구팀을 청보그룹에 매각하고 사라진다.

또한 인천이라는 구도(야구도시)에 있긴 했으나 지역주의라는 기반을 생각했을 때 아랫녁에 있던 삼성이나 해태 그리고 롯데 같은 팀의 응원분위기가 따르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인천 보다 휠씬 큰 서울에서 야구를 할 때 지금은 덜하지만 상당수 자신의 고향팀을 찾고 응원했었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프로야구의 흥행을 몰고 오는 팀은 수도권에 연고를 둔 팀보다는 지역 특히 경상도나 전라도 그리고 충청도지역에서 오래 활동한 팀이 영향을 준다.

과거엔 관중들의 난동이 있었고 패싸움 심지어는 버스에 방화를 하는 끔찍한 사건도 있었다.

지금은 대구라고 해서 삼성, 부산이라고 해서 롯데, 광주라고 해서 기아, 그리고 대전이라고 해서 한화를 응원한다는 원칙이 줄고 응원문화도 많이 다양해지고 조직화된 느낌이다.

특히 과거엔 성인 남자들이 분위기를 주도 했다면 지금는 여성들의 열정적인 응원과 관심이 대단하다.

한화의 경우 90년대 초반 빙그레 이글스 시절 김영덕 감독 시절 연패가 있었다.

당시 감독은 삭발을 하고 분위기를 쇄신하고자 했으나 강팀 무등산 폭격기 선동열이 투수가 던지는 해태타이거즈에게 또 연패를 했다.

대전의 관중들 야구장으로 들어와 난동을 부려 분위기는 험악해 졌고 아수라 장이 되었다.

경기에 지자 심판들을 폭행한 경우도 있었고 잠자는 숙소에 찾아가 농성을 한적도 있었다.

그후 빙그레 이글스는 한화 이글스로 이름이 바뀌었고 세월이 흘러 대전구장은 한화이글스파크라 했고 고속전철이 개통되고 나서는 여러 지역에서 관중들이 찾아오고 과거 난동을 부리던 분위기는 사라졌다.

당연히 그래야 하고 변해야 했다.

그리고 보살팬이라는 유행어도 생기고 8회인가 '육성응원'도 한화응원단의 상징이 되었다.

지금은 코로나로 인해 관중들 없이 경기를 하고 있다.

어쩌면 10개 구단은 연습경기 하는 느낌도 있겠지만 엄연히 프로야구사의 기록이 남는다.


한화이글스는 과거 삼미나 쌍방울 같은 재정지원이 약했던 팀이 아니다.

새로운 각오와 함께 자신들을 응원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잊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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