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집에 있는 아이들을 데리고 시화호 인근 잿머리 성황당에 다녀왔다.
삼국시대 안산의 옛이름이 '장항구'라고 불렀다. 아마 바다 안쪽으로 들어간 모양새가 '노루의 목'처럼 생겼던 것 같다. 실제 전국의 지명에는 '노루'가 들어가는 곳이 여렀있다. 쏙 들어간 사이로 마을들이 있었고 외침도 많았기에 동네 이름에 '초지'란 이름도 있고 '별망성'이란 성도 있다.
이 이름들은 군사적인 목적으로 생긴 공간이다.
안산의 동이름 중에는 고잔동이라는 이름이 있는데 곶(튀어나온 부분의 땅: 반도라고 하는데 이 표현법은 일본식이다.)안에 있는 동네라는 뜻이며 인천에도 고잔동이 있고 평택쯤에는 고잔리가 있다.
과거 김포 인천 시흥 안산 화성 평택등의 지역은 수상교통이 좋아서 육로 보다 왕래가 많았고 배를 타고 멀리 황해도 넘어 평안도 까지 남으로는 충남해안과 전라도까지 이어져 있었다.
멀리 중국으로 가는 곳도 과거엔 남양만 위의 당항성을 통해 갔다고 한다.
아무튼 현재 시가지와 공단이 들어선 서해안의 움푹 들어간 곳에 위치한 한가한 어촌이었고 더 들어가 있는 군자동이나 반월동 그리고 안산동에 그나마 안산의 옛모습이 남아있다.
한마디로 산전벽해라는 말이 딱 들어 맞는다.
과거의 바다와 갯벌이 간척사업으로 인해 도시가 된 곳이며 그나마 옛모습을 찾으려면 높은 곳에 몇 곳있는 성황당이나 오래된 나무 그리고 몇 채 남지 않은 옛집들이다.
토박이들은 도시가 생기면서 이사를 갔고 전국 여러곳에서 이사온 사람들과 외국인들까지 자리를 잡은 곳이 안산이며 길을 지나다 보면 향우회에서 광고하는 현수막이 많고 서울 주변 위성도시에서 버스터미널이 잘 갖춰진 것이 이곳인데 길도 넓고 인구규모에 비해 시가지가 넓은 편이라 자가용이 없으면 힘들고 한 때는 택시가 잘되는 곳이었다.
또한 애초에 기초자치단체가 다른 동네가 합쳐저서 된 곳이다 보니 생각보다 다양하다.
윗동네는 인천이나 부천에 영향을 받았고 산쪽에 독립적인 안산관아가 있었고 아래는 수원화성과 관련이 있었다.
잿머리 성황당은 반월공단 끝부분 시화호가 내려다 보이는 곳에 있고 공장지대 한가운데 있다.
마치 포위된 상태인 것 처럼 느껴지고 한편으로 회색빛 바탕에 녹색이 남아 혼자 빛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첨단과학시대에 신을 만나고 뭔가 기원한다는게 웃기기도 하지만 요즘같아서는 뭐래도 잡아서 지금의 재난이 물러갔으면 한다.
아직 개나리와 목련은 활짝 피지 않았으나 매화꽃이 예쁘게 펴서 봄이라는 걸 알린다.
남쪽에는 봄꽃이 한창일텐데 힘들고 어렵고 어색할 것 같다.
모두가 지금을 잘 이겨내고 다 함께 웃었으면 좋겠다.
'여행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홍난파 생가를 다녀오다. (0) | 2020.03.27 |
---|---|
우음도에 다녀오다. (0) | 2020.03.24 |
부천 이지헌 북스... (0) | 2020.03.14 |
전원일기에 나오는 동네 (0) | 2020.03.03 |
신촌의 공씨책방 (0) | 2020.02.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