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엔 바깥출입을 삼가고 집에서 종일 있었다.
전원일기를 오랜만에 봤는데 가끔 내가 나고 자랐던 남양주의 마재마을 (정약용선생의 고향이 내가 살았던 곳 조선시대엔 광주땅이었다.)의 강변도 나오고 양수리 건너는 철교도 나오며 전에는 북한산 인근의 농촌마을에서 촬영을 했다고 한다.
가끔 양수리 장터가 나오는데 양수리는 양평 양서면의 소재지로 과거 한강수운이 발달할 땐 강원도의 나무를 잘라 타고 오기도 하고 이 당시 강물에 목숨을 잃을 수도 있지만 뗏목을 팔아 돈을 벌었다는 것이 '떼돈'이라는 말로 남아있다.
아무튼 강도 있고 뒤에 산도 있고 지금은 한강의 수원지 지만 80년대 초 중반 한강을 건너는 훈련이나 도피탈출 훈련을 하기도 했고 뒷산에는 큰 관측소도 있었으며 사격장이 있어 고물장수들이 들어와 고철을 주워가기도 했던 군사지역이었다.
간혹 대한뉴스가 나올 때면 어디서 많이 본것 같아 자세히 보면 어릴적 뛰어 놀던 곳이라 더 놀랐다.
가끔 전원일기에선 강원도에 회사가 있는 버스가 다니기도 하고 양수리인지 다른 읍내의 가게인지 서점이 나왔는데 시아버지인 김회장은 큰 며느리인 박씨( 고두심분)가 공부하는 걸 보고 책을 고르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지금은 시내에 서점도 문을 닫는데 25년전까지만 해도 군사지역이나 소읍에 서점들이 있었고 책의 구성도 다양했고 지역의 문화공간으로 자리하고 있었고 레코드가게도 있었으나 지금은 거의 보기 힘들다.
서울 외곽의 시골들이 말끔이 정비되고 식당과 카페 그리고 산책로가 정비되고 자전거도로가 생겨 편리한 점도 있으나 도시민들을 위한 것만 많아 졌으나 토박이들이 생활해 왔던 공간이나 시장이나 상가는 하나둘 사라지고 사진이나 기억으로 남아 있어 아쉬울 때가 있다.
오히려 서울시내 청계천이나 동묘 신설동 아니면 동대문 시장 근처에 예전의 것들이 모여있고 이 마져도 사진을 찍거나 관광의 한부분으로 남아 상인들에게 별 의미가 없다면 쇠퇴할 것이라 생각한다.
서울 뿐 아니라 전국의 시골 동리도 지역의 주민들과 외부에서 찾아오는 사람들이 사진만 찍고 지나는 공간이 아니고 뭔가 소비하고 상생하는 곳이면 좋겠다.
'여행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잿머리 성황당에 다녀오다. (0) | 2020.03.24 |
---|---|
부천 이지헌 북스... (0) | 2020.03.14 |
신촌의 공씨책방 (0) | 2020.02.17 |
안양 서이면 사무소 (0) | 2020.02.05 |
도시재생과 카페 골목 (0) | 2020.02.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