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운동의 배화학교를 가다.
배화학교는 구한말 개교한 1898년 개교한 여학교로 이름은 윤치호가 개명했고 한때 한서 남궁억이 교사로 있었다.
현재 배화여중고와 배화여대가 있으며 역사도 역사지만 오랜 건물들과 시설들이 현대의 것과 함께 잘 보전된 공간이다.
문제는 여학교다 보니 함부로 들어 갈 수가 없고 학생들이 없는 시간 둘러봐야 하기에 주의가 필요했다. 더 안쪽으로 들어가 둘러보고 싶었지만 어쩌겠는가?
아무튼 오랜역사를 지닌 배화학교 교정을 살펴보겠다.
원래 학교터는 백사 이항복의 집이 있던 곳으로 오성대감 이항복은 권율장군의 사위였고 이곳을 권율장군이 물려주었고 후대의 집안도 이곳에서 살며 번성했는데 훗날 이 집안에서 이시영형제들이 나오게 된다. 필운동은 필운대에서 비롯되며 '필운'은 이항복의 호이며 아쉽게도 안쪽에 있어 방문하지 못했다.
일단 학교 북쪽엔 배화여중이 있고 더 안쪽엔 배화여대가 신식건물로 자리 잡고 있으며 남쪽으로 걸어 나오면 본관이 있고 정문쪽으로 나오다 보면 생활관 건물이 뒷쪽 언덕엔 설립자 캠벨여사의 흉상과 기념비가 있다. 여러개의 건물이 문화재급이지만 현재 특별관리되는 곳은 생활관이며 서양식과 한식이 조화를 이룬다.
아담한 운동장 한편엔 체육관이 있고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과학관(들리는 말로는 과학관을 없애고 여대기숙사를 만든다고 해서 구성원들의 반대가 있다고 한다.) 도 있다.
배화학교는 많은 동문들을 배출했고 각종 체육행사나 예능에 있어서도 이름을 떨쳤다.
백년이 넘어가는 근대식학교건물들은 일제강점기가 되기전 만들어지고 전쟁의 폐해와 도심의 변동에도 살아남아 동시대 학교 보다 문화적 자산이 많고 옛것과 오늘의 것이 어울려 존재하고 있다. 또한 학교 언덕에 서면 주변 북악산과 경복궁 서울 도심이 한눈에 들어오는 멋진 곳이다.
학교의 교훈은 성 (믿음) 망 (소망) 애 (사랑) 이다.
우리나라 여성교육의 큰획을 담당한 배화여학교의 발전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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