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러시아라는 나라가 상당히 먼 외국이라고 생각하지만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고 일본이 대륙을 진출하면서 이들을 격파하고 우리나라의 외교권을 가져가며 우리와 멀어졌고 왕조는 붕괴되었다.
만약 러시아의 해군이 블라디보스톡에서 강하게 있고 발전적이었다면 러일전쟁의 양상은 어떻게 전개되었을지 모른다. 물론 정치체제는 문제가 많았고 패전은 볼세비키혁명으로 바람이 분다.
조선의 개화기 친러파들이 있었고 군사적 도움을 얻기를 원했고 외교권박탈을 당했을 때 이상설을 따라 나선 사람이 러시아 공사 이범진의 아들 이위종이었다. 그는 당시 러시아어, 영어, 불어가 능통한 외교관이었고 군사학교를 다닌 경력이 있던 인재였고 헤이그특사에서 통역과 문서 기자회견은 그가 담당했다.
그 후 러시아가 소련이 되고 독일과 그리고 일본과 격전을 치룬 이들은 육상에서는 다양한 화포와 전차로 대응을 했지만 전쟁터가 넓고 수많은 인명을 희생당했으니 2차 세계대전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죽은 것으로 알고 있다.
상처를 많이 입었으나 이들의 무기체계는 동구의 중심이 되고 디자인은 투박하고 화포의 구경은 다양하나 내구성이 좋고 극한 상황에서 비싼 미제무기 못지 않은 성능을 발휘했다.
이중에 일부는 노태우정부시절 차관을 돌려받지 못한 것을 대신해 받았는데 알다시피 군출신이지만 위대한 보통사람을 표방한 정부는 북방정책과 함께 평화통일 정책을 추진했었고 나름 시대 분위기에 따라 적극적인 면이 많았었다.
당시 육상무기인 장갑차와 전차를 받아 기계화부대장비로 쓰기도 했고 현재는 중부권 기계화 군단에 장비되어 있다.
그리고 당시 헬기도 들어 왔는데 바로 우리가 산불을 끄는데 쓰기도 하고 구난작업과 수송업무도 하는 헬기가 있으니 바로 까모프(KA 32)이다.
2차 세계 대전 중 만들기 시작하여 현재까지 다양한 기종이 개발되고 실전 배치 되었으며 그 중 최신형에 가까운 기종이 우리 정부 산하인 군과 소방대에 배치 되어 임무를 수행하고 있고 미국에 들여온 것과는 또 다른 특징이 있다.
90년대 말 부터 러시아는 자신들의 장비를 알리고 팔기 위해 우리나라에 찾아오고 요즘엔 각종 행사에 참여하여 자신들의 경쟁력을 뽐내고 있다.
우리군도 미군이 주고 가거나 그들에게 구입한 장비도 사용하지만 러시아의 것을 쓰고 있는 경우도 있고 그들과 군사교류도 하고 있고 러시아는 넓은 훈련장을 임대해주겠다는 제안을 수십년전에 해욌었다.
국제관계는 구밀복검이란 말 처럼 앞과 뒤가 다르며 향후 어떻게 변화할 지 모른다.
난 명분과 의리도 중요하지만 국제관계에선 실속을 챙겨야 하고 내편을 많이 만드는 것이 중요하며 남의 것을 최대한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연암 박지원이 강했던 청을 알기 위해 그들 내부로 사람을 보내고 변발을 각오하고 적극 대응하던 방안을 제시하던 '허생전'의 방략이 생각난다.
그때나 지금이나 주변엔 힘쎈놈들 천하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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