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이야기

80년대 초중반 교련선생님에 대한 기억

lkjfdc 2024. 1. 29. 21:09

70~80년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에서 교련선생님이 학생들을 무자비하게 구타하고 혼내는 장면이 있었다.

많은 수의 네티즌들이 과거 이야기를 하면서 폭력적인 학교문화를 이야기 하고  특히 교련선생님이 왜 있어야 하고 이런 선생은 선생도 아니고 또 어떤 이들은 군대에서 진급이 안되서 쫒겨난 잉여들이라고 비난을 하고 또한 과거 얻어 맞은 기억을 부각시키며 '교련'이라는 과목과 교련담당 선생님을 악질로 이야기 했다.

자신의 경험이 그렇다면  과거의 부정적인 모습을 떠올리기 싫었을 수 있다.

그러나 나는 교련선생님에 대한 기억이 그리 나쁘지 않았다.

영화에서 처럼 무지막지 하지 않았고 일반 교사들 보다 학생들을 엄하게 때리면서 규율하지 않았으며  더 전문적인 분야의 과목을 담당하여 타 학교에서 자리를 잡는 경우도 보았다.

또한 이분들은 전역후  학교라는 현장으로 바로 오면서 교육기관이라는 인식을 갖고 군대와는 다른 자세로 접근을 했던 것 같다.


그렇다고 내가  교련과목이나 시간을  좋아하거나 교련점수가 높거나  하지 않았지만 이분들의 경험을 귀담아 들었던 것 같다.

고등학교 1학년 때 교련선생님은 해군 학군단 출신(ROTC)으로 하얀 명찰을 달고 계셨고 해양관련이나 기관관련을 전공하셨던 것 같다.(당시엔 몰랐고 시간이 지나 추측해 보고 이분이 나중에 전근을 간 학교에서 담당한 과목을 보고 알게됨)

선착순을 할 때 '무찔러 가!'란 용어를 사용하셨었고 용어가 특이 했었다.

육군보병장교출신이 아님에도 총검술 부터 각개전투 그리고 병기본 내용과 화생방,기계훈련, 군사사, 대간첩 작전까지 훗날 군대에서 다시 배우는 내용을 자세히 설명해 주셨는데 거기에 해군에 관련된 것 그리고 그와 관련된 문화를 추가로 안내해 주셨었다.

특히  욕을 한마디도 안하셨고 감정조절을 잘하셨던 것 같다.

아쉬운 건 1학년을 마칠 때 즈음 부산의  선원학교(해사고등학교)로 전근을 가셨다.


그리고 2학년 때 잠깐  교련을 가르치신 분은 육군3사관학교 출신이셨는데 정훈장교 출신으로 소위 땐 보병병과로 휴전선 소초에서 소대장을 역임한 후 전환된 분이라 그런지 전방부대부터 후방부대에서 경험한 내용들을 재미있게 이야기 해 주셨고 솔직 담백하셨었다.

이 분 또한 욕설이나 폭력이 일절 없으셨고  정훈장교로 경험이 많고 대규모 강의를 많이 하셔서인지 요즘 유행하는 스피치 강사 같았고 연상법 같은 것을 이용 암기하는 법을 가르쳐 주셨고 누군가 선생님께 심하게 혼나면 교무실에서 보듬어 주시고 특히 재수하면서 학교에 원서를 쓰러오는 졸업생들에게 담당 교사가 아님에도 따뜻하게 웃어주시고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셨다.

수련회를 가면 밥과 반찬도  나눠 주시고  교련이 없어진 이후 학부에서 전공한 과목으로 전환  일반과목 교사가 되셨는데 강의력이 참 좋았던 분이다.

군인이기 전에 학교 선생님으로의 자세를 잃지 않고자 노력하던 분이셨다.

3학년 때 교련선생님 또한 육군3사관학교 출신이셨는데 어느날 갑자기 나타나셨는데 군인이 아니었다면 동네의 인기 많은 형  이미지에 미남인데다 허스키 하고 개성있는 사투리에 이야기가 끝이 없으셨다. 아마 여학교에 가셨으면 인기가 무척 좋으셨을 것이다.

얼굴은 도시의 엄친아 셨지만 충청도 사투리를 맛깔나게 하셨는데 유머감각이 뛰어나셨고 수업시간에 많은 웃음을 주셨었다.

원래 군장교는 교육 받을 때 고향 사투리를 많이 못쓰게 되어있지만 이분은 민간인이 되고 학교에서 수업을 하고 내용 전달을 잘하기 위해 그랬던 것 같다.

물론 제식이나 군사교육 땐 사투리를 잘 쓰지 않으셨고 엄격했으며 특히 시험감독할 땐 부정행위 자체를 엄하게 다루었기에  시험시간엔 긴장을 했었다.

포대장을 역임했었던 분이라 그런지 몰라도 숫자와 계산이
정확하셨고 복학생이나 학교에서 좀 친다는 아이들 또한  눈을 마주 보지 못할 만큼 쎈 성격이셨다.

언젠가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편을 나눠 체육대회 때 축구경기를 했는데 골대에서 상대 골대로 공을 한번에 차서 성공, 경기를 우습게  끝냈고 교련검열을 할 때 인근부대에 직접 찾아가 협조를 얻어 소총과 공포탄을 빌려 학생들에게 실습을 해보게 하고 전교생이 보는 곳에서   실감 나는 각개전투 과정을 보여주셨던 분이다.  

원래 높은 점수를 얻으려면 전교생을 엄청 교육하고 열병과 분열을 해야 하는데 당시 이 시범식으로 인해 높은 점수를 얻으면서 전교생이 장기간 고생하는 절차를 줄여 주었던 것이고 여러 교련선생님들과 융화를 잘 하셨던 것 같다.

우스갯 소리로 학생들이 잘 해줘서 자신이 대위에서 소령으로 진급한 것 같다고 (농담)하셨지만 배려심이 많으셨는데 내가 졸업하자 마자 그만 두시고 자신의 모교로 전근을 가셨다.

당시 각개전투 시범은 희망한 학생들이 참여했고 힘든 과정임에도 좋아했던 것 같다.

그리고 군대에서 경험한 것을 다양한 방법으로 지도해 주셨고 특히 공부에 지쳐있던 학생들을 잘 다독였던 분이셨다. 되도록이면 교련점수에 스트레스를 안받게 하고 비가 오거나 덥거나 추울 땐 수업에 대한 융통성을 잘 발휘하셨던 것 같다.

이분들 말고 학군출신 교련선생님이 계셨는데 잠깐 하다 일반과목으로 전환을 하셨는데 영화에서 처럼 늘 군복을 착용한 것이 아니고 수업시간과 행사 때만 군복을 착용했었다.

수련회는 무조건 참가 하셨었고 학생들이 길에서 금품갈취와 폭력을 당했을 때 체육선생님들과 초기에 나서서 해결을 하셨고 학교교사를 목적으로 준비한 건 아니지만 순화된 표현을 하고자 하셨고 특히 학생들의 고민을 많이 들어주셨던 것 같다.


당시  육군장교는 육군사관학교 출신이 많은 줄 알았지만 교련선생님들로 인해 각군에  2사관학교라는 것이 있고 3사관학교가 있으며 참전 이 후 임관한 장교들이 있다는 것도 알았으며 어떤 학교엔 6.25 참전을 하셨던 분도 계셨다.

교련교과서가 병기본 훈련을 잘 정리한 교범에 가깝다는 것은 군대에 가서  알았던  것 같고 이 교련수업으로 인해 실제 군생활을 할 때 새로운 것이 많지 않았다.

물론 군부대에 따라 주특기나 병과학교 교육이 병기본 교육보다 더 길고 중요한 경우도 있었지만 고등학교의 교련과목은 쉬운 내용이 아니었고 군장교 출신이라도 준비할 것이 많은 교과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그리고 당시 그 이후에도 학교폭력을 경험한 안좋은 기억이 있었겠지만 학교현장을 너무 부정적으로 보는데 있어 교사들만의 잘못이나 책임으로 돌려서는 안된다고 보며 압축성장과 하면된다는 신념이 자리한 시대의 결과물이 만든 부작용이라 생각하며 이해 할 수 있는 부분은 이해를 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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