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

친일파와 개화정책

lkjfdc 2023. 3. 23. 10:39

서울의 북서쪽 옛 서대문 형무소 근처에 가면 독립문이 있다.

원래 자리와는 다르지만 개화기 독립협회가 세운 것이다.


이 독립문은 당시 청나라로 부터 독립을 의미하였으며 당시 정부의 지원을 받아 만들었다.


사람들 중에는 일본으로 부터 독립을 의미한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지만 당시엔 청나라의 영향력에서 벗어난 상황,  이런 건축물을 만들었으나 결국 우리는 러시아를 꺾은 일본에게 국권이 피탈 된다.

시간을 돌려서 독립협회가 만들어 지기 전 여러해 전 갑신정변이 일어 났고 이 갑신정변을 일으킨 사람들 중엔  김옥균, 박영효, 그리고 서재필이 있었으며 이들은 갑신정변을 일으키기전 일본을 믿었고 당시엔 친청사대주의를 뿌리 뽑고 일본처럼 개화를 추진 본받으려 했었다.

그리고 급진개화파라고 말하던 이들은 임오군란 후 일본과 조약을 맺었던 제물포조약의 사신으로 일본에 가며 그곳에서 탈아입구(아시아를 벗어나 유럽으로 들어간다!)의 정책을 추진하는 자들과 만나 자신들의 의견을 개진하고 그들의 영향을 받으며 야심이 있던 급진개화파들은 국내로 돌아와 청나라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개화정책을 추진 하고 정권을 잡기 위해 갑신정변을 일으키나 청의 개입으로 실패하고 일본의 도움을 받아 망명을 한다.


그리고 김옥균은 일본에 남았고 서재필은 미국으로 가 미국을 경험헌다.


일본에 남은 김옥균은  그림이나 글을 만들어 돈을 벌고 조선의 역적? 인 김옥균에 대한 대우는 그리 좋지 못했고 조선정부는 역적의 인도를 요구했지만 이루어지지 못했으며 청나라에 건너갔으나 홍종우에게 죽는다.


일본은 당시에 우리나라에 자신들의 세력을 심으려 했고 이들을 이용했다.

우리나라에 많지 않던 개화파 지식인들은 일본을 모델로 정책을 추진하려 했고 이것이 수백년 지배를 받던 청나라에게 벗어나 독립국이 되는 것이라 믿었지만 대륙세력을 꺾은 일본에게는 아예 나라의 존재가 사라지는 수난을 당한다.

지금 세상이 바뀌었고 우리의 국력은 당시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해졌고 경제규모도 커졌다.

그러나 머리속에 박혀 있는 사대주의 DNA는 사라지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또한 과거의 경우처럼 극일을 가장한 친일파가 존재하고 일본을 이해하고 편드는 세력이 많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일본은 크게 바뀐 것이 없고 자신의  나쁜  과거를 숨기고  가려고 하는데  같이 덮어 주려는 것 같다.

오히려  도려내고 밝혀야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 하지 않는다.


과거나 현재나 이 땅은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각축장이며  미국은 동아시아에서 패권을 강화하기 위해  우리와 일본이 과거를 잊고 가까워 지길 바라지만 우리는 우리의 방식으로 일본에 대응해야 한다.


지금 우리나라와 일본의 모습을 보면 개화기 때의 모습이 보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