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

그림으로 파악하는 옛날

lkjfdc 2024. 8. 2. 16:50

토요일 동네 식당의 벽에 걸린 한국화 한점의 장면이 눈에 들어 온다.

결혼을 마치고 시집으로 오는 장면으로 마을의 사람들은 말을 탄 신랑과 가마를 타고 오는 신부를 바라보고 있다.

과거 결혼식은 낮과 밤이 만나는 저녁에 신부의 집에서 이루어 졌다.

혼인날짜는 신부측에서 잡았는데 낮은 양이고 밤은 음이며 낮과 밤이 어울리는 시간 결혼식을 하고 마을사람들과 잔치를 했는데 사람들은 각종 음식재료를 가지고 오기도 했고 일을 거들었다.

음양의 조화는 의미를 둔 것이고 실제로는 일하고 난 후 동네사람들과 함께 즐기기 위한 것이라 생각한다.


신랑은 처가에 오래 머물러 있기도 했지만 조선후기가 되면서 신부는 시집에서 시부모 밑에서 생활을 하고 가끔 친정 식구들이 보고 싶으면 중간에서 만나기도 하고(반보기) 장터나 읍내에 가서 친정의 소문을 들었다.

시집에 들어가 생활을 하면서 여성의 지위는 조선초나 고려에 비해서 약해진다고 볼 수 있다.

결혼식 땐 관리나 높은 계층이 입던 옷을 한번 입어보는데 그냥 두루마기나 평상시 보다 약간 좋은 옷을 입고 결혼을 한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그림을 보면 산도 좋고 물도 좋은 평화로운 마을에 두성씨가 만나(결혼)잘살았음을 기원하는 글씨가 써있는 것 같다.

시집으로 들어오는  건 가을인 것이 분명하고 지붕에 말리는 고추를 보면  조선후기임을 추측하며 반두(족대)를 이용해 물고기를 잡는 것을 보니 아직 개울물이 덜  찬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밭고랑을 파서 농사를 짓는 것도 조선후기에 유행을 하는데 수확량이 늘고 농업규모를 크게하게 되고 계층의 분화를 가져 오게 된다.

다음으로 큰 규모의 기와집은 재료가 비싸고 구하기 어려워 왠만한 권력과 경제력 없이는 소유할 수 없었고 만약 동네에 큰 기와집이 있다면 사당이거나 재실 또는 학교일 가능성이 높다.

대부분은 초가에 살았고 돈이 많아도 권력이 없을 경우 큰 기와집에  살았을 경우 괴씸죄에 걸릴 수 있었다고 한다.

지금도 이러한 문화는 사람들 사이에 남아 있는 듯 하다.


멀리서 보면 평화로운 마을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삶의 현장이며 그 사이사이 통과의례를 하는 장면을 잘 보여주는 것 같다.

그림 한점으로 한 시대를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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