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적 골목엔 차도 별로 없었고 먼지가 날리기도 했다.
읍내에 살때 벌써 개천은 오염이 되어 있었고 큰 개울은 그나마 강수욕을 할 수 있었고 재첩이나 다슬기가 지천이었다.
물론 계곡엔 물이 맑아 가재나 민물새우도 있었다. 그리고 도룡뇽알과 개구리알 두꺼비알이 젤리형태로 고인물가에 있었다.
그런 곳에 살았고 40여년이 지나 다시 보니 사라져 버렸고 개울엔 발조차 담그기 어렵다.
그리고 골목마다 아이들이 많았고 딱지치기,구슬치기, 밤이 다 되어도 집에 가지 않고 술래잡기를 하고 놀았었다.
개구리는 너무 흔해서 잡는 것에 대한 죄스러움이 없었고 중학교 1학년 때 까지만 해도 개구리 해부를 했었으며 산간에 사는 녀석들은 민물새우를 반찬으로 해오기도 했었다.
그리고 가끔 심심해서 파보았던 것이 개미굴이었다.
나무가지를 동원하다 호미를 가져와 파보고 수많은 일들과 애벌레 그리고 날개가 있다는 여왕개미를 찾고자 집요하게 살폈던 기억이 있다.
곤충에 관한 책도 읽고 백과사전도 찾아보고 그것이 꼭 성적에 들어가는지 상관도 없고 동네에서 모인 어린아이들은 학년이 하나라도 높은 선배의 말이 학교선생님 보다 정확하다고 믿고 행동을 했었다.
간혹 중학교 1학년 선배가 초등학생 틈으로 비집고 들어와 하나라도 가르쳐 주면 좋았고 어짜피 중학생들끼리 어울려 봐야 당시에 몇몇은 담배나 술을 즐기는 경우도 있었고 괜히 어른 흉내 낸다고 몰려다녀서 패싸움도 하고 좋지 않은 결과도 있고 진학문제가 있다보니 편하게 노는 것도 아니었고 학교가 끝나면 과외를 받는 경우도 있었다.
아무튼 요즘처럼 집, 학원이 아닌 시절 개미굴을 파보고 유리어항을 개울에 설치하여 고기도 잡고 그걸 라면과 끓여 먹기도 했고 학교에서는 분단별로 솥을 보자기에 싸서 들고가 개울로 가서 밥을 해먹기도 했었던 시절도 있었다.
공부라는게 정리하고 외우고 시험 잘 봐서 성취감을 얻고 칭찬받는 것도 좋지만 같이 재미있게 노는 것 또한 의미가 있지 않은가 생각해 본다.
그많던 골목의 어린이들이 보이지 않고 개미굴을 파서 개미를 관찰하고 궁금해 하는 일도 이젠 없는 것 같다.
꼭 학자가 되고 전문가만 심도 있고 난해한 문제나 사실을 공부하고 연구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일단 관심이 많고 그 다음 사람이 많아야 뭔가 해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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