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이름 값으로 팀에 남을 것 같았던 억대 연봉 선수들이 은퇴시기가 되기도 전에 구단으로 부터 방출통보를 받았다.
선수 뿐이 아니다. 나쁜 결과로 인해 코치 감독까지 헤어지는 과정이 불편하다.
만났을 때 행사를 화려하게 하고 언론의 주목을 받고 신입선수들은 야구장에 초대되어 '모 선수를 존경하고 닮고 싶다!' 고 했지만 닮고 싶은 선수도 방출이 된다.
또 모구단은 송별식은 둘째고 내용증명을 보내며 갈등을 하고 있을 때 후배선수들과 팬들이 송별식 행사를 마련하자 떠나는 선수는 형식 뿐인 행사 보다 마음이 담긴 행사에 '더 큰 고마움을 표시했다고 한다.'
프로야구 뿐인가? 우리 사회의 헤어짐은 쓸쓸하고 허무한 경우가 많다.
공직에 근무한 분들이 힘든 부분도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동료들과 나눈 흔적들도 있고 짧지만 기관장과의 사진이나 감사패 같은 것도 있지만 일반인들의 직장이나 사업체의 경우 송별회는 제쳐 두고 어느날 갑자기 가방을 싸거나 책상을 빼고 문자로 해고를 통보하고 인수인계 조차 없는 경우가 있고 나가는 사람에 대한 악의적인 소문만 무성한채 정리되는 경우도 있다.
벌써 20년이 넘어 간다.
IMF의 광풍이 휘몰아 칠 때 다니던 학원은 학생도 많고 직원들 또한 여럿 있던 대형학원이었다.
환영식도 정해진 행사를 마련하여 뷔폐에서 하고 화려했었다.
3년 반짝 지역에서 이름을 떨쳤으나 운영자금이 돌지 않자 급여가 지급되지 않았었다.
급여가 많은 이들 부터 그만 두고 나갔고 원장실에는 대리인들이 다녀가기도 하고 분위기는 살얼음판이었고 출근하면 교무실의 책상은 이빨이 빠진 것 같이 허전했었다.
나 또한 버티는 데 한계가 있었고 (생활비는 둘째치고 교통비가 없었다. 결국 가족들이 안양에서 갑자기 집을 세들어 2년동안 함께 살았고 상태가 좋아져 다시 내려 갔다.) 학원을 그만 두게 되었는데 당시 몇 남지 않은 선후배 강사들은 구내식당에 부탁하여 조촐한 상을 차려 송별회를 해주었다.
나가는 시기의 차이가 있었을 뿐 대부분 그만 두게 된다.
남은 임금도 해결이 안된 상태... 미안함을 뒤로 하고 작별을 했고 그 후 생활을 쉽지 않았다.(밀린 임금은 여러 번 나눠서 받긴 했지만 그 과정도 복잡했다.)
그러나 싸우거나 일방적인 해고가 아니었기에 2년이 지나 그 학원에 운영자가 바꿘 후 시간강사로 근무를 하게 되고 그런 일들은 그 후 다른 곳에서도 있었다.
대부분 어느 정도 규모가 있던 학원에서 끝이 안 좋아서 나는 한 곳에만 다니지 않고 2~3곳을 파트로 하여 다녔다. 그래야 위험을 분산 할 수 있었다.
어떤 곳은 마지막 까지 혼자 남아서 학원이 문을 닫는 날까지 있던 적도 있었고 또 어떤 곳은 주인이 바뀌고 간판이 바뀐 황당한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운영자와 훗날을 기약했었다.
밀린 급여는 싸운다고 해결 되는 것도 아니고 포기하는 편이 정신건강에 좋을 때도 있었다.
지금은 시간이 흘러 운영자가 되었지만 좋게 이별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다시 만날 때 웃을 수 있고 그간의 신세를 갚을 수 있는 기회가 생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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