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취미우표, 사진 카메라, 오래된 중고음반, 옛날 돈, 항공기 모형 같은 것을 구할 수 있는 상가는 명동근처의 회현지하상가이다.
근처 중앙우체국이 있고 남대문시장과 연계되어 쇼핑하기 편하고 내국인 뿐 아니라 외국인도 많이 찾는다.
인사동을 사람들이 문화의 중심이며 볼거리라 이야기 하는데 차 마시고 술마시고 근처 조계사를 둘러보고 한정식을 맛보고 이런 것은 좋은지 모르나 각종 자료나 수집품을 찾아보고 구하는 건 동묘나 신설동 풍물시장,황학시장이고 이러한 것들을 더 잘 정리하여 파는 곳이 회현지하상가라고 보면 되겠다.
서울시내 가운데 이러한 상가가 있다는 건 그나마 취미문화나 옛것을 찾아서 구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것이고 고위중심지의 기능을 담당했다는 증거이다.
그러나 상징적이고 오래되었던 곳이 운영자의 개인사정인지 아니면 임대료 감당을 못해서인지 모르지만 인사동도 회현동도 가게가 이사를 가거나 운영자가 바뀌는 경우도 있다.
우문관은 우표수집에 대한 전반적인 문화를 주도한 우리나라 상징이었고 각종 우취관련 자료와 도록을 만들어 낸 곳이고 우표상의 대표였다.
예전에는 작은 도시에도 우표상들이 있었지만 현재는 대도시에 한두개 그마져도 한시적 영업을 하며 운영하는데 어렵고 일부는 가게를 접고 인터넷으로 거래를 한다.
우문관 또한 인터넷체제를 구축 했었고 명동에서 영업을 했었으나 경기도 양평 강하면으로 내려갔으며 현재 운영자의 집에서 영업을 한다.
운영자의 연세도 있고 여러가지 여건이 서울 한가운데에서 영업을 하기 보다는 한적한 시골이 합리적이고 경제적이어서 그런 것은 아닐까? 생각을 하면서 같이 일하던 직원들은 회사가 서울을 떠나며 일을 그만 둘 수 밖에 없었다면 좋은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과거 우리나라 최고의 헌책방 '고구마'도 인터넷으로 영업을 하여 상당한 매출도 있었으나 경기도 화성의 한적한 시골로 이사를 가면서 직원들은 일을 접었고 문화적 불모지였던 곳에 새로운 건물을 만들어 지역문화도 살려보고 뭔가 이루워 지는 것 같았지만 서울에서 뽑아내던 각종 편익들과 직원채용등이 어려워지며 전용 건물은 경매로 넘어 갔고 지금은 사장님 혼자 그 많은 책을 인근 창고에 보관하여 팔고 있으나 예전 같지 않다.
우문관도 어쩌면 과거 서울의 복판에서 영업할 때 보다 상대적인 불편함과 어려움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서울에 있다면 바로 해결할 수 있는 발송업무나 소인작업 우표구매 그리고 다양한 고객들을 만나면서 알게 되는 우취계의 흐름 그리고 그들이 얻어가는 혜택과 함께 보다 많은 사람들이 모이기 좋았다.
우문관이나 헌책방 고구마 그리고 충북 단양으로 내려간 '새한서점'등은 좋아진 부분도 있지만 이 공간들이 과거에서 현재까지 이루워 놓고 만들어 놓은 다양한 기능과 영향력이 줄어 들고 결국 공급자와 수요자들이 서로 불편해지고 힘들어 지지 않았나 생각한다.
인터넷의 발달이 서울에 집중했던 각종 기능들을 분산 한 것 까지는 좋았다고 보지만 이런 전국적인 유통망과 영향력을 행사하던 업체의 위축과 이동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고 물량화에 따른 문화하강의 시대를 가속화 하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본다.
또한 이러한 산업의 위축은 소비자들의 관심과 구매가 예전 같지 않은 것이라 보며 시간이 지나 그 때 아쉬움을 표하고 다시 살리려 노력해 봐야 그때는 늦고 다시 살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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