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

비쌀 수 밖에 없던 양복

lkjfdc 2024. 5. 7. 21:12

지금은 국산 섬유가 좋아서 기성복을 사서 입었을 때 떨어지거나 약해서 버리는 옷들이 잘 없다.


또한 집에 있는 옷들의 종류가 많으니 돌아가면서 입게되고  덜 마모되고  손실된다.


간혹 오래된 이월상품의 옷을 샀을 때 실이 약해져서 터지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못입을 만큼 훼손되지 않는다.

그러나 과거엔 집에 보관한 옷이 많지 않아 어디 면접을 보러가거나 잔치를 갈 때 세탁소에서 빌려 입기도 하고 어떤 신인 가수는 자신의 양복이 없어 아버지 옷을 입고 가기도 하고 아가씨들의 경우 옷 때문에 자매들끼리 다투기도 했다.

작업장에서 일을 많이 하는 어른들의 경우 회사에서 통일된 작업복을 입다보니 옷을 많이 가질 필요도 없었고 어쩌다 양복이 필요할 수 있어 결혼을 할 때 신부측이 마련해준 옷감을 양복점에 주고 재단을 하고 재봉이나 바늘을 이용해서 옷을 만들었다.


또한 대학을 갈 때나 첫 취직할 때 친인척들이 양복점 티켓을 주거나 맞춤집에 부탁을 하여 옷을 맞춰 주었다.

나도 이모가 입학을 할 때 동네 맞춤집에 부탁을 하여 바지를 해주셨는데 유명 양복점의 신사복 부럽지 않았다.

요즘은 기성복도 좋고 잘 나와서 신사복도 가서 직접 사입거나 가격 또한 다양해서 자신의 취향대로 사입을 수 있다.

그러나 해방 직 후 섬유산업이 아직 덜 발달했을 때는 외국 특히 마카오에서 들여온 옷감을 갖고 양복을 맞춰 입는 사람들이 있어 이들을 '마카오 신사'라고 하고 서지( Serge)라는 이름의 천을 이용하여 옷을 만들기도 했다.

이후 섬유산업의 발달로 다양한 화학섬유가 나오면서 옷의 가격은 상대적으로 싸지고 다양해 졌지만 양복점에서 옷을 만들어 입는 건 돈이 들었고 겉으로 보면 비슷해 보여도 옷감의 재질에 따라 가격차가 많이 낮고 가끔 술집에서 술값 대신 양복 저고리를 맡겼고 주인은 그 가치를 알아서 그런 건지 모르나 이해해 주었다.

최근에는 어느 양복점에서  여러 사람에게  신사복을 만들어 주면서 비싼 옷감을 쓰기로 했던 것이 잘못되어 많은 돈을 환불해 주었다고 하는데 옷을 산사람들은 전문가가 아니니 모르고 지나갈 뻔 했으나 양복점 직원의 제보로 적발되었다고 한다.

같은 옷 같지만 옷감의 재질에 따라 가격차이가 크고 그것을 입는 사람들의 가치도 다양한 것 같다.

나야 직접 옷을 사입는 경우가 잘 없어서 모르며 옷 사러 가게에 가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옷을 잘 차려 입거나 자기 관리가 잘 되는 이들은 그 시간이 행복하고 신나는 일일 수 있다고 본다.

시대가 가면서 옷의 재질이 변화하고 가격도 다양하겠지만 옷을 맞춰입고 그 옷을 만드는 사람들의 솜씨에 따라 그리고 그 재료에 따라 많은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과학기술의 발달이 섬유류의 혁명을 가져오고 다양한 옷을 만들어 내고 그 결과 가격도 내려가고 때와 장소에 따라 다양한 것들을 입을 수 있다는 건 좋은 것이라 생각한다.


'역사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트럼프 전 대통령 저격사건  (0) 2024.07.17
성균관대 심산 김창숙선생 동상  (0) 2024.05.25
다양한 역사박물관  (0) 2024.04.25
명품 라이터  (2) 2024.04.19
이화여대와 김활란  (0) 2024.04.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