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하는 관혼상제
지난주에는 부산의 장례식장을 거처 영락공원의 화장장을 지나 김해공원묘원에서 하관을 마친 후 삼랑진을 지나 고속도로를 타고 대구를 거처 사촌형을 내려드리고 본적지인 합천을 거쳐 88고속도로와 대전 통영간 고속도로를 타고 집에 오니 자정이 다되었다.
본적이 합천이고 친인척들이 대구 경북 그리고 부산에 사는 경우가 많았었다.
현재도 나의 일가분들은 이쪽에 계신데 시간이 지나다 보니 돌아가시고 항렬상 이젠 나도 어른 측에 들어 조심스럽고 조카들은 늘어나는데 솔직히 자주 만날 형편이 안되며 잘 모른다.
사촌들의 나이가 70대 60대에 많고 내 또래는 많지 않기에 대하기 어려운 건 있지만 어릴적 부터 봐와서 어색한 건 없다.
그러나 핵가족 형태를 살 던 우리집과 대가족의 사촌들과는 사는 방식도 다르고 세대가 달라 생각하는 게 다를 수 있지만 거기에 따라야 하는 점도 있고 가장 차이가 있었던 건 사는 지역이 다르다 보니 정서도 달랐다.
대부분 아랫녁에 살고 우리만 적은 인원이 윗동네에서 떨어져 살다보니 고향 즉 본적지와의 연결고리는 아버지가 다 해오셨고 아버지가 가신 후엔 나와 동생의 차례가 되었다.
윗동네서 만날 일이 최근에 좀 생겼지만 아무래도 큰 일은 여전히 경상도에서 이뤄진다.
하지만 형편상 자주 갈 수 없고 어쩌다 가는 길...
이번에 가서 세월이 변하고 있음을 더 실감하게 되는데 과거엔 북적거리고 고향분들이 많다고 느꼈는데 이젠 이쪽도 핵가족화가 되고 어른들이 안계시다 보니 단촐해 졌다.
앞으로 큰일을 치를 땐 더 줄어들고 간소화될 것이기에 그에 걸맞게 조정하고 준비를 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례의 경우 이장이 이루워 져 합장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고 기존의 매장을 화장하는 경우도 많을 것이고 산재한 가족들의 묘지를 정리하여 한 곳에 모시는 경우도 많을 것이며 가족과 종친들의 협조가 무엇보다 필요할 것이다.
좋은 일 보다는 어려운일 힘든일이 많아질 것이며 도시에 사는 후손들은 이전의 촌락과 지역사회에 의존한 삶보다 개별적이고 각자 가정에 맞는 모임과 관혼상제를 해야 할 것이다.
밤늦게 까지 장례식장에 조문객이 붐비고 방명록에 서명한 이의 이름이 빡빡하던 시대가 가고 있다.
이젠 어렵고 힘든 그리고 기쁜일도 조촐하고 간소하게 치뤄 질 것으로 생각한다.
이에 따른 생각과 가치가 변화하고 살아가는 문화가 조금씩 또는 급격히 바뀔 수 있음을 받아들여야 할 때 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