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제사의 기억
lkjfdc
2021. 7. 17. 12:02
더운 날씨라 신경이 쓰이고 사전에 시장도 봐오고 동생들도 전화가 온다.
작년부터는 얼굴을 못봤고 집에서 조용히 지낸다.
종가집이 아니다 보니 일년에 몇 번 없긴 하지만 아내에겐 일 마치고 와서 해야 하는 부담이다.
생각해 보면 과거 큰 집의 제사는 많았고 차리는 음식이 많았던 것 같다.
육지속의 섬같은 곳으로 황강이 앞과 옆으로 낙동강이 흐르는 전형적인 배산임수 취락으로 조선시대엔 강을 통해 올라오는 배들이 있었고 인근 달성의 구지면나 창녕의 이방면으로 장을 보러가고 흥청거렸다고 하지만 70년대엔 쇠락했고 육상교통은 면소재지에 일제강점기 버스가 들어왔으나 원래 다른 면이었던 큰집으로 들어오는 길은 전마선을 타고 와야 하는 불편함과 함께 전기도 70년대 말 80년대 초 들어왔으니 타 지역보다 늦었다.
인구가 적었던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높은 산이 있던 것도 아닌데 대구에서 점심을 먹고 가면 어두운 저녁에 도착을 했다.
인근에 구마고속도로가 완성이 되었지만 창녕으로 통과 했고 막상 다리가 놓여지고 살만해 지니 젊은이들은 대구로 부산으로 마산으로 서울로 빠져나갔다.
당시 사촌형은 많은 기제사를 모시기 위해 정해진 날짜에 부산으로 가 제사음식을 장만해 왔었다.
이유는 부산의 둘째 큰 아버지가 비용을 내시고 이돈을 받아 부산의 시장에서 장을 보고 이것을 손수 지고 버스를 여러번 갈아타고 걸어서 집에 와서 준비를 했는데 사촌형수와 가족들의 애씀은 당시에도 힘들어 보였다.
냉장고가 있는 것도 아니고 우물에 의지하여 여름을 보냈고 큰집이다 보니 손님들의 왕래가 끊기지 않고 본적지 행정서류를 발급해 달라는 부탁이 오면 20여리를 돌아 면소재지에 직접가서 만들어 보내주시던 형님은 자신의 인생보다는 일가친척들을 위해 살았던 것 같다.
더울 때면 최고 온도를 경신하는 합천군의 날씨와 동네 입구 부터 어둡고 하늘엔 별만 떠있는 그곳을 가면 할아버지 같았던 큰 아버지가 '구정이 왔나?' 하시던 기억과 마당 가운데 평상에 저녁을 차려 내놓고 그간 쌓였던 이야기를 하던 그곳엔 빈집들이 더 많고 이젠 본적지로서의 기능만 있다.
더운 여름이 되면 자갈이 깔린 비포장도로에 선 버스에서 무거운 짐을 내리며 땀을 닦으셨을 사촌형의 그림자가 그려지고 다른 곳엔 밝은 전기가 눈부실 때 ...
까만 밤 작은 호롱불에 의지하여 제사음식을 나누던 그때가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