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반이야기

송창식 '그대 있음에'

lkjfdc 2021. 6. 20. 16:40




송창식은 60년대 후반~ 70년대 그리고 80년대 대단한 인기를 누렸고 그 이후에도 계속 활동을 하며 지금도 방송에 등장하는 대단한 가수다.

조용필이 밴드음악의 대표라면 통키타를 들고 음악을 하는 가수의 중심엔 송창식이 있으며 더 선배이다.

초기 윤형주와 트윈폴리오라는 듀오로 외국의 노래를 번안하면서 불렀으나 차차 자신들의 노래를 이후 독집을 내면서 자신이 작사 작곡한 노래를 발표한다.

쎄시봉이라는 음악감상실에서 활동을 했으며 70년대가 넘어가면서 셀브루에서 활동을 하며 여러 방송에 출연한다.

포크음악의 바람을 몰고 왔으나 당시의 정치 현실과 베트남전등 젊은이들은 좋아했겠지만 윗 분? 들의 정서나 당시 촌락의 인구가 여전히 많은 당시 서울과 캠퍼스 부근에서의 활동을 주로한 이들은 비슷한 성향의 음악인들끼리 모여 활동을 했다.

초기 송창식은 노래만 주로 했고 곡과 연주는 작곡가 김희갑이나 안건마가 리더로 있는 연주자 그룹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한다.

그 이후엔 기타리스트 강근식이 이끄는 동방의 빛의 도움도 받는다.

바보들의 행진 같은 영화의 음악에도 참여 했지만 규제를 받았고 대마초 파동으로 연예계가 휘청한다.

70년대 후반 나온 이 음반은 자켙엔 76년도라 되어 있고 판을 78년으로 표기 되어 있다. 대부분 자작곡이며 다양한 노래들이 방송을 탔고 유명해 졌다.(76년에 나온 것이 맞다.)

손목에 찬 전자시계와 아래로 갈수록 넓은 바지, 깃이 약간 넓은 셔츠는 당시의 유행을 말해준다.

70년대 초반 힛트한 '피리부는 사나이를 다시 수록했으며 '이슬비 ' 그리고 '한번쯤' '맨처음 고백' 등이 있고 ' 그대 있음에'는 시인 김남조 의 시에 곡을 붙였다.


김남조시인의 시는 종교적이고 긍정적인 부분이 많은데 그대 있음에도 그런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노래는 자신이 의도하지 않았으나 많이 애창되고 다양한 사람들이 찾으면서 영향력을 발휘하고 이것이 어떤 이들에겐 위협? 이 될 수 있고 사회분위기를 이상하게 만든다고 하여 규제를 하고 가수의 활동을 제한한다.

과거 이런 시대가 있었지만 그때의 기억은 당한 사람들만의 아픔이었고 많은 이들은 아무일 없이 지나갔으며 그냥 그럴 수 있던 시대가 아니었을까?

상처는 아물어야 하지만 당시의 모습은 정리되고 사람들에게 인식되어야 한다고 본다.